나는 기업 컨설팅 일을 하며 수많은 경영자들을 만난다. 최근 몇 년 사이 그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자주 듣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ESG'다. 누군가는 이를 부담스러운 과제로 여기고, 또 누군가는 불가피한 변화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내게 ESG는 기업이라는 거대한 배가 항해하는 바다의 조류가 바뀐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저어도 이제는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는, 그런 근본적인 변화 말이다.
얼마 전 한 중소기업 대표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창업 20년 차로, 한평생을 오로지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매출을 올리는 데만 집중해온 사람이었다. "요즘 거래처에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라고 합니다. 솔직히 우리 같은 작은 회사가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동시에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 사람의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돈만 벌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2020년 봄, 세상이 팬데믹으로 멈춰 섰을 때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무한 성장을 향해 질주하던 자본주의 시스템이 바이러스 하나로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무시해왔던 환경과 사회의 문제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였다. 기업들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윤만을 추구하던 기업들이 환경을 이야기하고, 사회적 가치를 말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위선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나는 이것이 진정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SG는 Environmental(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약자다. 단순한 약자를 넘어, 이것은 기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의 기업은 환경을 파괴하며 이익을 창출하는가?
당신의 기업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당신의 기업은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운영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은 마치 기업이라는 나무를 지탱하는 세 개의 뿌리와도 같다. 하나라도 썩으면 나무 전체가 흔들린다.
Environmental (환경) | Social (사회) | Governance (지배구조) |
|---|---|---|
기업이 | 기업이 | 기업이 스스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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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영역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환경을 보호하려는 의지는 투명한 지배구조에서 나오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는 그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힘이 된다. ESG는 기업이라는 유기체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생태계 그 자체다.
재무제표에 담기지 않는 가치
오랫동안 우리는 기업의 가치를 숫자로만 판단해왔다. 올해 매출이 얼마인지, 영업이익률은 몇 퍼센트인지, 주가는 얼마나 올랐는지. 그러나 그 숫자 뒤에 숨겨진 것들, 재무제표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환경을 파괴하며 벌어들인 이익은 언젠가 환경 규제와 소송비용으로 되돌아온다. 직원들을 착취하며 쌓아올린 성과는 인재 이탈과 평판 하락으로 무너진다.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위기의 순간 기업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ESG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측정하려는 시도이며, 기업의 진짜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려는 노력이다.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최근 몇 년간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목격했다. 글로벌 투자사들은 이제 ESG 평가가 낮은 기업에는 아예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젊은 세대는 환경을 파괴하거나 비윤리적인 기업의 제품을 불매한다. 우수한 인재들은 연봉보다 기업의 가치관을 먼저 본다.
이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마치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듯이, 디지털 혁명이 세상을 재편했듯이, ESG는 지금 기업 생태계를 근본부터 바꾸고 있다.
환경(E),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환경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탄소 배출이다. 2050 탄소중립은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었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기업은 무역장벽에 가로막히고 투자에서 배제된다.
나는 얼마 전 한 제조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공장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이 빼곡히 설치되어 있었고, 폐수는 정화 과정을 거쳐 재사용되고 있었다. 대표는 말했다. "처음엔 비용 때문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에너지 비용이 줄어들었고, 해외 바이어들이 먼저 우리를 찾아옵니다." 환경을 위한 투자가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사회(S), 기업은 섬이 아니다.
기업은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직원이 있고, 협력업체가 있고, 지역사회가 있다. 기업이 건강하려면 이 모든 관계가 건강해야 한다.
나는 한 IT 스타트업의 변화를 지켜본 적이 있다. 창업 초기, 그들은 무한 경쟁과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직률이 높아지고 번아웃으로 쓰러지는 직원들이 늘어나자 경영진은 변화를 결심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졌고,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이 결국 더 강한 기업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증명했다.
지배구조(G), 투명성이라는 힘
지배구조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투명하고 윤리적인 의사결정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독립적인 이사회를 통해, 중소기업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리더십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부정부패와 횡령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기업을 무너뜨리는 시한폭탄이다.
나는 수십 년간 투명한 경영을 해온 한 가족기업을 알고 있다. 오너 일가는 회사 돈을 사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고, 모든 의사결정은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업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업이 되었고, 위기가 왔을 때도 직원들과 협력업체, 금융기관 모두가 그들을 믿고 지지했다. 신뢰는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오직 시간과 일관성으로만 쌓을 수 있다.
작은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그 중소기업 대표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시작해야 합니다."
ESG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직원들의 복지를 개선하고, 투명한 회계 시스템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지금만을 보는 기업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으로 나아가는 것.
대기업들은 이미 협력업체 선정 시 ESG 평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금융기관은 ESG 등급이 높은 기업에 더 낮은 금리를 제공한다. 해외 수출을 위해서도 ESG 인증은 점점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작은 기업이라고 예외는 없다. 오히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지속가능성, 그것이 답이다.
결국 ESG는 '지속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다. 올해만 잘 버는 것이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에도 이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나는 요즘 기업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기업은 당신의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기업입니까?" 환경을 파괴하며 번 돈을, 사람들을 착취하며 쌓은 성과를, 불투명한 방법으로 얻은 이익을 자녀에게 떳떳이 물려줄 수 있는가?
ESG는 부담이 아니라 기회다. 더 나은 기업이 될 수 있는 기회, 진정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오래도록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는 기회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조류는 이미 방향을 틀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올라타 더 멀리 항해하는 것이다. ESG는 그 항해를 위한 나침반이자, 돛이자, 키다.
당신의 기업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필자 소개
진성한 | (주)한국산업기술경영연구원 대표
공장관리기술사이자 경영지도사로서 30년간 중소기업 현장에서 기업진단과 경영혁신을 실천해왔다.
현재 ㈜글로벌ESG검증그룹 및 K-ESG평가원 진단·평가위원, 메인비즈협회, 인덕대학교 ESG정책연구, ESG 경영컨설팅 전문위원 등 공공기관 및 전문기관에서 활동하며 중견·중소기업의 ESG 경영 정착에 힘쓰고 있다. 건국대학교 벤처전문기술학과 경영공학 박사과정을 졸업했으며, ISO인증 검증심사원이자 ISO인증 국제심사원 양성과정과 ESG 전문가 양성과정의 교육 전담교수로서 후진 양성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저서로 《중견·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ESG 완전정복1-ESG 경영의 이해와 실행 지침서》, 《중견·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ESG 완전정복2-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에코바디스 실행지침서》가 있다.